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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빠랑 부부동반으로 3박 4일간 여름휴가를 떠났다. 매년 여름마다 가까운 지인부부들이랑 섬으로 놀러 가는데 특히나 올해 휴가는 꿀처럼 달 거다. 아빠는 외로운 독수공방 안 하니 좋을 거고 엄마는 이번 한 주동안은 동생집도 안 가는 데다 친구들이랑 놀러도 가니 말이다.
동생이랑 통화하면서 몸은 좀 괜찮냐고 했더니 회복이 느려서 그렇지 서서히 돌아오고는 있다고 했다. 이 말저말 하면서 통화를 이어가는데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모야모야 할 말 있으면 해. 속에 꿍쳐놓지 말고. 엄마가 휴가 가면서 뭐 또 속이라도 뒤집었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르르 쏟아진다.
섬에 놀러 갈 때 자기네를 여객터미널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단다. 엄마네 집에서 터미널까지 걸어서는 15분, 버스 타면 10분, 자가용으로 가면 5분 남짓이다. 더우니 걷는 거 패스해도 버스 타면 코앞인데 짐 들고 버스 타기 싫다는 거고 택시 타기는 너무 가까워서 눈치 보인다며 그런 요구를 한 거다. 어이가 없다. 백번 양보해서 그 모든 이유가 다 타당하다고 해도 너무너무 이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게 동생네서 엄마집까지는 자가용으로 20분이 넘는 거리다. 더 중요한 건 요즘 동생서방이 너무 바빠서 매일 새벽 5~6시쯤 나갔다가 밤 8시는 넘어서 퇴근한다. 왕복 3시간이 넘는 출퇴근을 하는 데다 요즘은 일이 많아서 토요일도 출근을 한다고 했다. 밤에 퇴근해서 오면 늦은 저녁 먹고는 동생 데리고 운동시킨다고 마트-더우니 시원한 곳-를 다녀오니 매일 수면시간이 4~5시간밖에 안 되는 셈이다. 한 마디로 수면부족이다. 만성피곤이고. 간신히 일요일 하루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데 보통 2시쯤은 돼야 일어난단다. 피곤한 거 아니까 동생도 그냥 두는데 엄마가 요구한 거 해주려면 그게 안 되는 거다. 아무리 늦게 일어난다 해도 최소 11시는 일어나야 할 테니까.
이런저런 사정을 얘기하면서 돌려서 거절하고 택시를 콜 해준다고까지 하는데도 요지부동 같은 소리만 반복하더라나. 애초에 택시를 안 타겠다는 이유가 가까운 거리를 짐 실고 내리고 하는 게 기사눈치 보여서라고 했으니까 말이다. 엄마랑 아빠 신세를 지고 있는 동생 입장에서는 미안해서라도 딱 잘라 거절은 못 했단다. 자기 서방한테 미적거리면서 얘기했는데 항상 부모님 입장에서 대변해 주던 서방이 처음으로 다녀오는 건 다녀오겠는데 부모님이 이해는 안 된다는 얘길 했단다. 자식들 고생하는 거 뻔히 알면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자식인 나도 이해불가인데 남의 자식이 그걸 이해할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동생 시부모님은 자식들 힘들다고 말 안 하고 자기들이 이고 지고 땡볕이건 폭우건 다니시는 분들이다. 먼 거리도 아니고 5분, 10분 거리를 본인들 귀찮다고, 본인들이 기사한테 아쉬운 소리 하기 싫다고 자식들 고생하는 거 가뿐히 무시하는 행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사실 섬에 가는 배표 예매하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다고 했다. 예전부터 섬에 놀러 갈 때마다 항상 동생이 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해 줬었다. 다 자식 있는 사람들인데 꼭 엄마랑 아빠가 나서서 표를 예매한 거다. 근데 본인들이 할 줄은 모른다. 우리 애들한테 예매하라고 하면 된다고 주위 사람들한테 생색내면서 오지랖이다. 근데 그것도 동생이 멀쩡할 때 얘기다. 동생은 지금 항암 중인 환자다. 근데 그 와중에 표 예매를 운운하는 거 자체가 웃기는 거다. 꼭 필요한 일이 있으면 차라리 나한테 얘기하라고 했었는데 내가 좀 까탈스럽다 보니-분명히 한소리 했을 거다. 이런 와중에 왜 본인들이 하지도 못하는 티켓팅을 도맡았냐고 뭐라 했을 거고 그런 잔소리 듣는 거 불편하고 싫었겠지- 그냥 만만한 동생한테 또 그런 부탁한 거다. 본인들 불편한 거, 본인들이 뭐 못 한다고 하는 거, 본인들이 아쉬운 소리 해야 하는 거 무진장 싫어한다. 근데 그래서 그 뒤치다꺼리를 자식들-특히 순딩한 동생네 부부-한 테 떠넘기는 거다. 나나 동생이 제일 싫어하는 우리 부모의 문제점이다.
어차피 가는 거 잘 다녀오라고, 그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 푹 쉬다오라고 좋은 소리 해야 하는데 속이 부글부글해서 그냥 전화를 아예 안 했다. 엄마랑 아빠 고생하는 거 너무 잘 알고 있다. 기왕이면 조금만 더 배려해 주면 참 좋겠고 더 고맙겠는데.. 항상 그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한다. 죄책감은 덤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던가? 우리 엄마랑 아빠는 없는 빚도 만들어낼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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