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다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나잇값 못 한다는 말은 대다수의 어른들 중 일부가 듣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내가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 건 나이가 든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거였다. 아니, 어른이라고 다 나잇값을 하는 건 아니라는 게 맞는 건가? 세상에는 일부라고 생각했던 나잇값 못 하는 어른이 더 많았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세상을 바라보는 견문이 넓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너그럽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주위에 나이가 들어서 내면까지 진짜 어른이 되는 사람은 드물었다. 대부분은 어릴 때, 젊을 때 모습 그대로 나이만 먹어갔다. 아니, 오히려 퇴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존경받는 진짜 어른을 보는 게 쉽지가 않았다. 나이가 드니 ..
큰애가 아침부터 고열이라 부랴부랴 병원에 간 날이었다. 처음 갔던 병원은 오픈전인데도 대기실이 이미 꽉 차있어서 앉을 자리도 없었다. 결국 걸어서 근처에 있는 다른 병원을 갔다. 거기도 대기하는 사람이 많은데다 하필 그날따라 의사선생님은 지각. 그래도 첫 병원보단 사람이 조금 적어서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큰애가 열이 심하다보니 자꾸 늘어졌다. 안스럽고 걱정되고 기다리는 동안 조바심이 나서 발만 동동 구르는데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언젠가부터 발신자로 아빠가 뜨면 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나 동생 모두 마음이 무겁다. 본인한테는 엄청 중요하고 급한 일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들었을때는 그저 그런 일인 경우가 대다수다. 엄마랑 다투고 외출했는데 니 엄마가 전화를 안 받는다, 그냥 외출했는데 니 엄마가 전화를..
오랜만에 고딩때 친구들을 만났다. 가까운 곳에 살고 애들도 고만고만하고 전업들이지만 은근히 다들 공사다망해서 마트에서 스치는 정도를 제외하면 제대로는 일 년에 한 두어 번 정도 만난다. 그래도 만나면 어제 본 것 같은 분위기는 쌓아온 연륜때문일꺼다. 고딩때 모습, 대딩때 모습들은 다들 어디 가고 새치염색, 애들 입시, 사춘기애들과의 갈등 그런 얘기들로 꽃을 피운다. 친구 만난다고 옷 고르고 가방 고르는 그런 설레임(?) 없이 입은 옷에 편하게 봐서 좋고 사는거 비슷하니 척 안해서 좋고 그렇다. 이제 나이가 나이다보니 우리한테 일어나는 이슈는 건강. 한 친구는 몇 년전 암 초기진단을 받고선 수술하고 지금은 정기검진을 다니는데 세상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져서 그거 하나 좋단다. 한 친구는 애가 사춘기에 접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