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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애를 학원에 보내고는 밀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하원하면 병원에 갔다가-약한 코감기 증상 때문에 코가 자꾸 막힌다고 했다-간식도 사 먹고 들어오자고 했다. 작은애는 이따가 뭐 먹을까 종알대며 신이 나서 학원에 갔고 나는 애 하원 전까지 밀린 집안일을 끝낼 생각으로 서둘렀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기분 좋게 설거지를 마무리하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발신자가 아빠인걸 보자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뭔 일이야. 안부인사면 다행이지만 아니면 또 뭔 별거 아닌 일로 사람 짜증 나게 하려나 싶었다. 외출하는 목적지의 대중교통을 알아봐 달라는 건가? 아니면 엄마랑 싸웠나? 엄마가 화나서 전화를 안 받나? 그래서 엄마 달래라고? 대충의 뻔한 레퍼토리를 생각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예상을 정말 빗나갔다. 차사고가 났단다. 버스랑 부딪혔고 아빠는 비교적 괜찮은데 엄마가 많이 다쳐서 지금 119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갔다며 빨리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아빠전화를 끊자마자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다 죽어가는 소리로 전화를 받더니 죽는 줄 알았다며 울먹였다.
전화를 끊자마자 설거지하던 그릇들을 내동댕이쳐버렸다. 걱정도 되지만 동시에 미칠 것같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내일은 동생이 6차 항암을 끝내고 퇴원하는 날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이 주간의 후유증이 시작되는 거고. 그런데 엄마가 다쳤단다. 운전면허 반납하라고, 차 없애라고 자식들이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올해만, 나이 들었다고 무시하냐, 나 운전 잘하는데 하면서 생난리를 치고 자식들 말을 귓등으로 듣더니 결국은 이렇게 대형사고를 친 거다.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버스가 조수석을 정통으로 들이박았고 에어백 2개가 다 터졌다고 했다. 백퍼 폐차각이다.
이렇게 정리될 거 서로 하하 호호 기분 좋게 마무리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결국은 가족들 모두한테 치명타를 남기고 얼굴만 붉히는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 하필 동생 퇴원 전날, 동생신랑 너무 바쁜 이 시기에 콕 집어 내 아빠가 이 사단을 만들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사고의 정도에 비해 둘 다 전신 타박상 & 엄마가 왼쪽 손목에 금이 가서 반깁스를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내상이나 골절이 없다는 거. 한동안 후유증이야 있겠지만 더 큰 부상이 아닌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거다. 그렇지만 불행은 엄마가 두 달간은 손목 깁스를 해야 하고 그래서 동생이랑 조카 케어가 어렵다는 거다. 동생으로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계속 통화를 하면서 상황파악을 하던 동생이 결국 울었다. 지금 이 판국에 자기더러 뭘 어쩌라는 거냐면서 울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좌불안석이다. 엄마도 지금 이 사태가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지 아니까. 조카 걱정, 내일이면 퇴원해서 앓아누울 동생 걱정에 전전긍긍했다. 나랑 서방도 크게 안 다쳐서 다행이란 생각이 가시자마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동생 어쩌나였다. 엄마랑 아빠는 서운하겠지만 결과를 안 이상 그다음이 문제였다.
어쨌거나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엄마랑 아빠는 간신히 병원에 병상 두 개 찾아서 입원을 했고 조카는 동생시부모님이 하원시켜서 돌보기로 했고 나도 병실 들어가는 것까지만 확인하고선 귀가했다. 오늘은 이렇게 끝났는데.. 이제 내일부터 진짜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봐도 도무지 명쾌한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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