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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모님

우리끼리 휴가..

레스페베르 2023. 11. 24. 17:00

동생이랑 조카, 나랑 작은애 넷이 이번 겨울 괌으로 여행계획을 잡고선 지난 여름에 예약을 했다. 큰애는 고딩이니 제외, 서방은 가게랑 큰애 돌보미로 제외, 동생신랑은 회사때문에 그리고 휴양형 여행을 싫어해서 제외다. 편안하게 오붓하게 단출하게 가 이번 여행의 목적이고 구성원들도 딱 좋았다. 한 가지만 빼면..

예전부터 엄마는 애들 좀 크면 여자들끼리만 여행을 가자고 했었다. 그리고 그건 문제가 없다. 엄마는 딸들이랑 노는거 잘 즐기고 좋아하니까. 또 같이 가면 잠깐잠깐 엄마가 애들이랑 숙소에서 쉴때 동생이랑 둘이 로비에서 차라도 느긋하게 마실수 있을테고 말이다. 그렇지만 엄마와의 동행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하나 있다. 바로 그것때문에 동생이랑 둘이 고민이 꽤 길었었던 거다.

일단 아빠 혼자 있는거 은근히 신경쓰인다. 괜찮다고 하고 또 가끔 엄마 혼자 친구분들이랑 여행 다니니 낯선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여행의 동반자가 자식들이란거다. 퇴직이후 자존감이 바닥을 치다못해 땅굴을 파고 있는 요즘같은 때에 그건 우리집 애들은 엄마만 좋아해, 난 퇴직해서 그냥 쓸모없는 노인네야 라는 아빠의 쓸데없는 망상에 날개를 달다못해 제트기를 태우는 형국이다. 지금이야 우리앞에서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어느날! 문득! 기분 안 좋은 날, 우울한 날, 엄마랑 싸운 날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르는 소리다.

또 하나, 같이 간다해도 진짜 난관인 문제는 따로 있다. 우리 아빠는 엄하고 강압적인 할아버지 밑에서 순종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본인자식은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서인지 우리는 그런거 전혀 모르고 컸지만 문제는 우리가 중딩, 고딩이 될때까지 아빤 일년의 거의 태반을 외국생활을 하면서 어린 우리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 했다는거다. 거기다 나는 엄마 표현대로 하자만 순한 아이였고 (동생은 아니었지만) 아빠의 마음 대부분이 큰딸인 나한테 쏠려있다보니 아이들이 말 안 듣는 평범한 일상을 잘 모른다. 우리 애들이 클때는 아빠가 직장생활을 하느라 바빴기에 또 잘 몰랐고.

문제는 아빠의 퇴직과 동생 애가 말 안 듣는 시기가 겹치면서 수면위로 드러났다. 어른이 하지마 한다고 넵 하는 아이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자야지 한다고 넵 하는 아이는? 근데 아빠는 그런걸 이해 못 한다. 거기서 문제가 생기는거다. 왜 하지 말라는데 자꾸 하는지, 자라는데 왜 안 자는지, 먹는거 가지고 왜 투정을 부리는지 아빤 다 이해불가다. 부모가 시키는데 왜 말을 안 듣지? 왜 토를 달지? 아빠의 결론은 부모의 오냐오냐로 인한 거라는 거다. 그러다보니 어려서 그런거다 라는 엄마나 나나 동생이랑 자꾸 부딪힌다. 집에서야 잔소리 해도 그러려니 하겠는데 쉬고싶어 가는 여행지에서도 그러는건 우리한테도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다.

아이들이 여행가서 숙소에서 게임하고 영화보다가 좀 늦게 잘수도 있는걸 본인이 자야하는 밤 9시에 불끄고 안 잔다고 뭐라 한다. 본인이 보고싶은거 봐야한다고 애들 프로 바꾸고선 TV 리모콘 독점한다. TV 볼륨 높여놓고 좀 줄이라고 해도 들은척도 안 한다. 애들이 가만 못 앉아있는것도 잔소리한다. 핸드폰이나 테블릿 보는것도 뭐라하고.

매번 그런건 아니지만 누누히 얘기했듯 언제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니 긴장이 되는거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엄마나 우리가 반박하면 서러워한다. 같이 있으면 좋아하고 행복해하면서도 가끔씩 저런 똥고집을 부리니 솔직히 피곤할때가 많다. 그나마 사회생활을 할땐 마음의 여유가 있어선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같더니 퇴직하고 나서부턴 오히려 퇴보다. 중간에서 엄마만 전전긍긍이다.

나는 그냥 모른척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만 동생은 그 지적 하나하나 마음에 쌓아두니 생병이 날 지경인거다. 근데 하물며 여행까지 가서? 근데 거기다 해외까지 갔는데? 엄두가 안 났다. 같이 가면 좋아할거 알지만 그게 다가 아니란것도 안다. 본인마음에 안 들면 뚱하고 우리뒤에서 엄만한테 궁시렁대고 그럼 짜증난 엄마가 가끔 우리한테 발설하고 나는 무시하고 동생은 생병이 나고. 지난 여름휴가때 저조합으로 여행 갔다가 톡톡히 제대로 당하고 왔기에 고민이 더 깊었다.

결국 내가 질렀다. 다음번에 우리 둘이서 엄마, 아빠랑 다녀오자 고. 이번 여행은 애들을 위한거지 부모님을 위한게 아니라고 말이다. 여행상품부터 예약하고선 후통보를 했다. 섭섭해도 그건 엄마가 감수할 수 밖에 없다고. 엄마도 내심 섭섭하겠지만 그래도 이성적으로 이해해줬다. 아빠는 엄마랑 같이 가지 그러냐며 예쁘게 얘기해줬지만 안 속는다. 하루에도수십 번도 넘게 바뀌는 아빠말을 아빠마음을 곧이곧대로 듣기엔 경험치가 너무 쌓였다.

이 세상에서 나나 동생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아빤데.. 한 번도 의심해본적 없는데.. 자식이란게 이렇게 이기적이다. 내 자식들 불편한거 싫고 그런거 보기 싫어서 이러는거다. 동생이랑 적금 하나 따로 더 만들어야 할까보다. 효도여행 뭐 그런 용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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