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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전 부슬부슬 비 내리던 어느 날. 여행후 간만에 동생을 만났다. 서방이 작은애 하교를 책임진다 했으니 오랜만에 여유있게 점심도 먹고 차도 마시고 여행경비 정산도 하고 서방이 좋아하는 총각김치도 얻어올 계획으로 나선 길이었다.
점심까지는 잘 먹었는데 차를 마시러 가면서 조금씩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동생이 속이 좀 답답하다는거다. 약간 소화가 안 되는것 같은 기분? 차를 주문해놓고선 잠시 근처 약국에서 약을 사와서 먹었다. 근데도 점점 심해진다. 결국 차를 take out 해서 동생집으로 갔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등도 두드려주고 하는데 갑자기 오바이트를 하는거다. 통증도 심해지고. 이건 병원 가야하는거다. 약국약으로 될게 아니다.
동생집 근처에 있는 가정의학과는 차로 가는 것보다 걷는게 차라리 빠르다. 부축하고 끌고 해서 간신히 병원도착. 위경련 or 십이지장경련? 뭐 그런것 같단다. 주사도 맞고 약처방도 받고.
근데 내려올땐 내리막이지만 갈땐 완전 오르막이다. 병원에 주차장이 없어서 올땐 어찌저찌 걸어왔지만 갈때는 도저히 안될듯. 약국에 동생 앉혀놓고 혼자 걸어서 차를 가지고 내려와서 약국앞에서 동생 태워서 다시 동생집에 데려다주느라 그 동네를 빙빙 돌았다. 그 동네 골목들은 다 일방통행이고 유턴도 없고. 정말 오랜만에 그 동네 구석구석을 다 돌았던것 같다.
조카 유치원 하원시간도 다 되어가는데 동생신랑은 야근이라 9시쯤 귀가한단다. 일단 엄마 콜. 엄마 뭐해~ 전화할땐 소프라노로 전화받던 엄마 목소리가 동생집에 와달라하자 급다운된다. 종일 집정리하고 이것저것 하다가 이제 막 쉴려고 따끈한 이불속에 들어가 누웠단다. 그런데 갑자기 빗속을 뚫고 버스 타고 오라니 짜증나겠지. 이해는 하지만 서운한건 어쩔수 없다.
아프다니 안 온다고는 안 하지만 기왕이면 걱정하는 모습과 다정한 말과 함께 와주면 좋으련만 만사 귀찮은 모습, 약간 마지못한 모습으로 오니 보는 사람도 아픈 사람도 온 사람도 그냥 다 맥이 빠진다. 어쩔수 없지만서도.
조카를 데리러가니 유치원앞은 엄마들이 가져온 차들이랑 학원차, 유치원셔틀버스로 아수라장이다. 한구석에 어찌저찌 차를 구겨넣고 뛰어갔더니만 조카는 간만에 이모 왔다고 신났다. 집에 데려와서 옷 갈아입히고 씻기고 간식 먹이고 학습지 숙제 시키고선 같이 퍼즐을 하는데 엄마가 도착했다. 동생은 반기절모드. 인수인계 하고선 나도 come back home 했다.
다음날 동생은 동생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전화해선 각자 자기 얘기를 한다.
엄마는 어제 비가 와서 추운데 돌아다니고-귀가는 동생서방이 모셔다줬으니 올때만 버스 탄거다- 조카가 옆에서 자꾸 재채기해서 감기가 옮은것 같고 동생은 죽을 끓여줬는데 조카는 수제비를 해달래서 또 수제비 만드느라 고생했다. 많이 힘들었는지 지금 몸살이 난 것 같다 등등.
동생은 엄마가 죽을 끓여는 줬는데 3숟가락 정도 먹고선 나중에 먹겠다하고 자다깼더니 죽이 없더라. 엄마한테 물어보니 죽 쬐끔 끓여서 동생 주고 남은건 그냥 엄마가 먹었다더라. 그래서 죽집서 죽 사다가 먹는 중이다-병원에서 당분간은 부드러운 음식 먹으라고 해서 엄마한테 분명히 내가 얘기했는데 까먹었나보다. 동생서방이 동생 쉬게 어머니 모셔다드릴때 조카 데리고 가자고 잠바만 입혀서 데려나오라니 엄마가 짜증을 내더라. 그냥 편하게 후딱 가고 싶은데 애 옷 갈아입히는거 귀찮아하는게 바로 느껴지더라. 결국 동생서방이 올라와서 애 옷 입혀서 데려갔다 등등.. 쩝.. --;;
빗속을 뚫고 바로 와 준 엄마가 고맙다. 그건 사실이다. 안 고마와하면 우리가 나쁜 인간들인거지. 근데 항상 2% 가 부족하게 느껴지는건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기왕 와 줄거 조금만 정성스럽게 말하고 행동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항상 마지못한듯한 그 태도랑 말 때문에 고생해서 와주면서도 우리 모두 찜찜함이 남는거다.
우리가 이기적인거 안다. 감사해야하는거 잘 안다. 근데 자식이란게 그런가보다. 그냥 부모는 자식한테 다 무조건이었으면 싶다. 물론 그건 우리의 이기심이다.
우리도 자식을 키우기에 한편으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가끔은 엄마가 이해가 안 갈때가 있다. 특히 약간 애정결핍이 있는 동생은 더더 그렇다.
그래서 동생은 몇 일째 우울하다.
비염인 손주가 재채기 했다고 감기 옮겼다고 얘기하는 엄마한테 서운하고 죽 한 그릇도 안 끓여두고 사위 왔다고 냉큼 가버리는 엄마도 서운하고 딸 아픈거 알면서도 손주 밥 걱정 안 해주는 엄마도 서운하고.
서운한거 천지다. 어지간하면 포기하겠고만. 얘는 매번 기대하고 매번 뒤통수 맞고 매번 서운탄다. 미련곰탱이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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