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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일이 있어 외출했다가 동생이 점심 사준다며 하도 오라는 통에 동생네에 들렀다. 원래 동생 계획은 둘이 같이 밥 먹고 차 마시면서 요즘 급다운인 내 기분도 좀 풀어주고 화기애애하게 얘기도 하고 그럴려고 했단다.
그런데 초반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동생이 주민센터에서 필요한 서류를 몇 가지 발급받고선 밥을 먹자고 했는데 정작 가는 주민센터마다 이건 여기서 안 되고 이건 저기서 안 되고 하면서 3군데를 돌게하더니 마지막 센터에서 결국은 전산프로그램 오류로 반만 되고 반은 안 되는 결과가 나와버렸다. 슬슬 짜증이 밀려왔지만 내 기분을 살피면서 눈치보는 동생때문에 꾸역꾸역 참고있는데 갑자기 동생에게로 아빠전화가 왔다. 직원과 상담중이던 동생이 아무 생각없이 나한테 전화를 넘겼고 나 역시 아무 생각없이 전화를 받았는데..
동생집 근처 병원에 왔던 아빠가 같이 점심 먹을까 하면서 전화한거였다. 생각지도 못 한 큰딸까지 있다니까 갑자기 아빠는 상기된 목소린데 나랑 동생은 둘 다 급다운. 아빠랑 밥 먹으면서 이런저런 엄마흉, 엄마뒷말, 엄마흠 등등의 하소연들을 들을 생각을 하니 날도 흐리고 속도 불편하고 기분도 꿀꿀한데 완전 최악이다 싶었다. 그렇지만 오고싶어하는 아빠를 거절할 싸가지가 나나 동생에게는 없다. 일단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하고선 동생은 계속 상담, 나는 화를 삭히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잠시후 아빠가 왔다. 근데..
아빠가 정말정말 오랜만에 내가 알던 옛날 내 아빠의 모습으로 온거다. 자기말만 맞다고 우기고 툭하면 삐지는 지금 아빠모습 말고 내가 힘들때 항상 내 옆에서 지켜주던 아빠, 내 말을 들으면서 나를 위로해주던 아빠, 항상 우리를 걱정하던 아빠로 말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아빠랑 셋이서 즉석떡볶이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아빠가 맛있는거 사주겠다고 이것저것 권하는 모습도, 아빠가 계산한다고 먼저 일어서는 모습도, 우리 얘기 들으면서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도 다 옛날 아빠 모습이라 마음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렸다.
아빠랑 이런저런 사는 얘기들을 하면서 오랜만에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서 차안에서 내내 울었다. 사실 아빠한테 매달려 울고싶었다. 나 지금 너무 힘들다고, 사방을 둘러봐도 막막하고 길이 안 보인다고, 어떻게 해야할지 알려달라고 하고싶었다. 그렇지만 못 했다. 지금은 아빠가 내 고민들을 해결해줄수있는 능력이 없으니까. 내 말을 듣고 위로는 해주겠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해줄수없는 아빠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상처받을꺼 아니까 아무 말도 못 했다. 행복해보이는 아빠 마음에 짐을 안기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더 시간이 많이 흘러서 아빠가 우리를 떠나면 그때 나는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래도 나는 아빠한테 자식으로써 정말 최선을 다 해서 잘 했어 라고 할까. 내 목소리를 듣고 무지 반가워하면서도 행여나 폐가 될까 눈치보며 조심스러워하던 아빠 목소리가 생각나서 자꾸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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