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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모님

부모님의 인간관계..

레스페베르 2024. 3. 20. 15:30

몇 일전 엄마집에 다녀왔다. 핸드폰에서 아빠이름으로 뭘 신청해야 하는게 있는데 아빠랑 엄마 둘 다 잘 모르는 내용이고 마침 조카가 아파서 동생은 집에서 꼼짝마라 상태. 신청기간이 코앞이라니 겸사겸사 반찬도 얻을겸 다녀온거다.

10분만에 후딱 볼일 끝내고 가져갈 반찬도 챙겨놓고는 커피랑 빵 한 쪽 먹으면서 한가롭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다. 4월경에 아빠 모임에서 제주도 여행을 가는데 시기나 가격 모두 여행사에 바가지 쓴것 같다고 엄마가 흉을 봤다. 남자들이라 뭘 제대로 따져도 안 보고 덜컥 계약부터 해버렸다나? 아빠 고향분들 모임인데 남자들 모임이랑 그 회원들 와이프 모임이 따로 있다. 엄마네도 가냐니깐 자기넨 날 좋을때 좋은 가격으로 가지 유채꽃 다 지고난 그런 어설픈 시기에는 안 간단다. 역시 엄마들이랑 아빠들은 노는것에 머리 쓰는것도 다르다.

사람들이 많아? 하니 처음에는 회원들도 엄청 많았는데 하나둘 돌아가시고 아프시고 해서 이젠 멤버들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아빠네 모임 회원분들 중에 뇌졸증으로 쓰러지셔서 엄청 오래 투병중이신 분이 계신데 문득 생각이 나서 어떻게 지내시냐 물어봤다. 그랬더니 몇 일전에 돌아가셨단다. 쓰러지시고 거진 10년을 요양원을 전전하시다가 결국 집으로 못 가고 돌아가셨다며 아빠는 안스러워했고 엄마는 그 와이프분을 지독한 인간이라며 디스했다. 아빠도 무언으로 동조를 표했다. 한땐 형님, 아우님 하면서 좋아죽더니만..

손주를 봐주느라 와이프가 집에 없던 평일, 하필 취준생 아들이 외박한 날에 혼자 계시다가 쓰러지셨고 뒤늦게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몸도 못 쓰고 설상가상 험한 치매까지 오는 바람에 요양원에서도 여러 번 쫓겨나고 옮기고를 반복했었다고. 코로나전까진 아빠랑 엄마가 꾸준히 면회를 갔었는데 마지막으로 봤을때 아빠를 보고 자기 와이프 기둥서방이라며 얼마나 욕을 해댔는지 엄마랑 아빠가 학을 떼고 돌아왔다고 들었다.

그거야 아파서 그런거니 기분은 나빠도 이해한다손 치는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더랬다. 그 아저씨가 모임의 총무였는데 회비통장을 갖고 있었고 쓰러지고 어느 정도 지난뒤에 모임에서 회비통장을 받아오자는 얘기들이 슬슬 나왔단다. 아저씨야 아프시니 그 와이프한테 몇 번 조심스럽게 얘기를 했는데 자꾸만 나중에 나중에 하더니 시간이 엄청 지나버렸다고. 그러다 어느날 우연히 와이프 한 명이 그걸 알게되면서 와이프 모임에서 그 얘기가 나오고 다들 아저씨의 와이프한테 당장 남자들 회비통장을 돌려주라는 얘기를 했단다. 그게 그렇게 서운했는지 그날로 발길을 딱 끊었다고. 근데 어렵게 어렵게 돌려받은 통장에는 잔고가 얼마 없었다고 했다. 몇 천만원이 있어야 할 통장엔 달랑 2백만원 정도가 남았었단다. 통장내역을 조회해보니 아저씨가 누워있는 동안 계속 돈을 뺐더라나. 병원비때문이라고 하기엔 돈이 없는 집이 아니었다보니 다들 많이 괘씸했었던지 고발을 하네 어쩌네 하다가 그냥 그대로 손절해버렸다고 했다.

장례식은 다녀왔냐니 아무도 안 갔단다. 헐~ 잘못을 해도 아줌마가 했지 아저씨가 한 것도 아닌데 다들 너무했다 하니 둘 다 대답이 없다. 연락도 안 왔는데 뭐~가 끝이다. 장례식장에 다녀온 교회신도 한 명이 이모저모 말을 전달해줬는데 아줌마도 딸도 아들도 다들 슬픈 기색 하나 없이 하하호호 했다며 아무리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너무하더라고 했단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동생이랑 통화를 했다. 그 집 얘기 들었냐고 했더니 자기도 몇 일전에 들었다며 엄마는 그렇다쳐도 아빠가 장례식장에 안 간건 자기도 의외였다고 했다. 남들이 뭐라해도 내 할 도리는 해야 한다는게 아빠의 평소 철학인데 아빠도 나이가 들어서 변한건지 아니면 마지막에 사람들 앞에서 욕 먹은게 너무 분했던건지 모르겠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아는 아빠는 그럴 사람 아닌데.. 나이가 들면 세상사 다 이해하고 너그러워지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보다. 우리 아빠라고 예외는 아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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