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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밤 생난리를 쳤다.
애들 방학 시작이라고 기분 좋게 서방이 쏜 치킨이 사고의 원흉이었다. 둘러앉아 신나게 각자 먹는 중에 갑자기 작은애가 컥컥거리는 거다. 목에 가시가 걸렸단다. 닭뼈도 목에 걸리나? 물도 마셔보고 토하게도 해봤지만 안 나온다. 전에 '호기심 딱지'라는 애들 프로그램에서 봤는데 목에 가시가 걸렸을 때 어설프게 뭘 먹어서 빼려 하는 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했었다.
호흡이 힘든 건 아니지만 가시가 걸려서 통증이 계속 이어졌다. 이건 무조건 병원행이다. 밤 12시가 다 된 시각. 응급실이 있는 2차 병원이 집 근처에 있음을 감사하며 서둘러 갔다. 응급실 원무과에서 접수를 하는데.. 어랏? 원무과에서 하는 말이 진료가 안 될 수도 있단다. 이건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래? 목에 가시가 걸린 건데 대한민국 종합병원에서 진료가 안 될 수도 있다고? 잠시 후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나와 작은애를 베드에 눕히고선 플래시로 목구멍을 살폈다. 육안으로 안 보여서 내시경을 해야 할 듯한데 여기선 안 된다며 3차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만약 거기서도 안 되면 119에 전화해서 증상을 얘기하고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알아봐 달라 해야 한단다. 목에 가시가 걸린 것뿐인데 뭐가 이래. 어이가 없었다.
이게 이럴 일인가 구시렁대며 다시 3차 병원 응급실로 갔다. 오래 기다릴 텐데 하는 한가한 걱정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금방 도착해서 접수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기실엔 환자들이 가득이었다. 잠시 후 의료진의 호출. 상황 설명을 하고선 의료진이 작은애를 살폈다. 산소포화도 검사를 하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하던 의료진이 아까 2차 병원에서 들은 것과 같은 설명을 했다. 첫째, 이비인후과 당직의가 없다-그래서 못 본다. 둘째, 소아한테 내시경 검사를 할 수 있는 당직의가 없다-그래서 못 본다.
병원에서 알려준 선택지는 두 개였다.
119에 전화해서 서울에 있는 소아 내시경을 할 수 있는 3차 병원 응급실을 수소문해서 가거나-애가 위급이 아니라서 우리가 직접 가는 거다- 현재 산소 포화도는 정상이니 아픈 거 좀 참고 일요일에도 진료를 보는 내시경 가능한 이비인후과나 내과를 가보거나 란다.
여기서도 퇴짜. 생각도 못 했다. 주말 밤에 아이 목에 가시가 걸린 게 이렇게 큰일이라니.
작은애는 한시라도 빨리 가시를 뽑고 싶단다. 목에서 계속 걸리니 따갑고 아프겠지. 서울로 가기로 결정하고 서방이 119에 전화를 했다. 지금 119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진료가 가능한 병원 안내까지다. 연락해서 진료가 가능한지는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 이대 목동병원을 시작으로 3군데쯤 전화해 보고서 내린 결론은 일단 일요일에 진료를 하는 이비인후과나 내시경 하는 내과를 가자는 거였다. 3차 병원 응급실 그 어디서도 소아의 목에 걸린 가시를 제거해 줄 수 없다고 했다. 해줄 수 있는 의사가 없단다. 의료파업의 문제에 소아라서도 문제인 거였다. 어이가 없다. 여기 대한민국인데? 여기 대도시인데? 서울로 가도 된다고 했는데도 받아줄 수 있는 곳이 없단다. 주말 밤에 소아나 청소년이 목에 가시가 걸린다는 건 진짜 큰일인 거였다. 진짜 몰랐다.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2시가 다 된 시간. 일단 작은애를 재우고는 일요일에 진료 보는 이비인후과를 찾아 메모하고 119에서 알려준 내과도 위치검색을 해뒀다. 혹시나 자다가 호흡이 안 될까 싶어 옆에서 거진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러고 일요일 아침.. 병원 갈 준비를 하고선 작은애를 깨웠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작은애가 하는 말~ '엄마, 가시가 안 느껴져. 없어졌나 봐' 했다. 밤새 호흡하면서 자연스럽게 빠져버렸나 보다. 다만 약간 목이 아픈 기운은 좀 남았단다. 아마 가시에 찔렸던 상처 때문이겠지. 그래도 혹시 몰라 전날 밤 119에서 알려준 내시경 가능한 내과를 갔다. 헐~ 근데 여기도 육안으로 확인가능한 것만 제거할 수 있고 내시경은 안 된단다. 뭘 알려주신 건가. 일요일에 진료한다던 이비인후과들도 다 전화를 안 받는다. 거참.
나도 서방도 피곤해죽겠는데 작은애는 생생하니 기분도 아주 좋다. 일단 정신이라도 좀 차릴 겸 병원 바로 옆 스벅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는데 아침부터 아이스초코랑 소금빵을 득템 한 작은애는 혼자 신났다. 생생한 거 보니 이젠 진짜 괜찮나 보다. 결국 월요일에 이비인후과를 가보기로 하고선 집으로 컴백. 나랑 서방은 멘탈 탈탈인데 이 와중에 작은애는 큰애를 붙잡고 마라탕 사달라고 조르고 있다. 진짜 원수가 따로 없다.
어쨌거나 이번에 알게 된 중요한 사실들.
하나, 닭 먹다가 목에 가시 걸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종종 있다는 거.
둘, 평일 오전이나 오후에는 이비인후과로 바로 쫓아가야 한다는 거.
셋, 주말에 그러면 진짜 답이 없으니 반드시 주말에 진료 보는 이비인후과 꼭 알아둬야 한 단거. 그래도 밤은 답이 없음.
마지막으로 어지간하면 주말 밤엔 그냥 순살 먹는 걸로.
생각보다 소아들 응급상황은 성인과 달라서 진료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단 것도 이번에 절절하게 깨달았다. 우리나라 소아진료 하는 곳이 정말 적더라. 응급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병원 간판 태반이 피부과, 성형외과, 통증의학과 인 게 우리나라 현실인 거였다. 안 아픈 거, 안 다치는 게 답이였다. 가능한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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